[추억의 명곡] 죽음을 넘어선 노래, 1926년의 비극적 팡파르 '사의 찬미'
안녕하세요. 우리네 삶의 굽이마다 스며든 노래의 역사를 기록하는 [뉴토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희망가', '목포의 눈물', '홍도야 울지 마라', '황성옛터'를 통해 일제강점기 민중들이 어떻게 노래로 슬픔을 다스렸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낙인을 남긴 곡, '사의 찬미(1926, 윤심덕)'입니다. 이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희대의 '정사(情死)' 사건과 맞물려, 한국 음반 산업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비극적인 팡파르였습니다. 왜 윤심덕은 죽음조차 찬미해야 했을까요? 1926년 여름, 현해탄의 차가운 바다로 뛰어든 그녀의 마지막 노래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926년 8월, 현해탄의..
2026. 6. 19.